검은 옷의 법관, 이제 더 이상 무섭지 않아요!
작성일2018.06.12
사법체계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검사와 변호사가 피의자의 잘잘못을 가리면, 검정색 옷을 입은 법관이 엄숙한 표정으로 판결을 내리는 장면이 가장 흔한 대답일 것입니다. 사법체계가 지니는 엄숙하고 무거운 이미지는 성인일지라도 위압감을 느끼고 주눅들게 합니다. 하지만 사법체계는 성인에게만 해당되는 절차가 아닙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법절차에 발을 들이는 아이들, 그리고 피해자나 이해관계자로 법정에 서게 되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마저 움츠려지는 이 과정에서, 아동이 현재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아동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아동을 위해 사법체계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모든 아동은 항상 사법체계와 접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피해자,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로 법정에 서거나, 또는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법절차에 발을 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사법체계에 들어오던, 모든 아동의 신체적, 정신심리적 발달정도를 고려해 평등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동친화 사법체계의 핵심 가치입니다. 특히, 아동과 성인은 발달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 상이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기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며 또래문화나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로, 형사 처벌보다 주위 친구들과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범죄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멀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범죄에 가담하기도 합니다. 또래 압력 외에도 가정환경 등 아동을 범죄로 이끄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아동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정당한 처벌을 하되, 아동의 발달상 차이를 고려하고 스스로를 돌이키고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아동친화 사법체계의 접근법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사법체계에서 모든 아동은 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요? 아쉽게도 현재 사법체계에서는 보호자의 영향이 매우 큽니다. 경찰이 수사 절차를 마무리하고 수사기록을 검사에게 보내면, 검사는 범죄를 저지른 아동이 형사재판을 받을지, 소년보호사건으로 처리될지, 혹은 기소유예하고 집으로 돌려보낼 것인지 판단합니다. 이 경우, 범죄동기와 죄질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이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고려됩니다. 다소 죄질이 나쁘더라도 부모님이 자녀를 자주 접견하고, 향후 아이를 잘 교육하여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아동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가해자 아동 측이 피해자를 찾아가 잘못을 빌고 손해를 배상할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수사기관에 찾아와 아동을 위해 읍소해 줄 부모가 없거나 피해자를 찾아가 손해를 배상해 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반대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는 미성년자의 경우 연령, 경험, 지식, 힘 등에서 수사기관과 압도적인 차이가 나기 때문에 법 앞에서 더욱 약한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아동이 법 앞에 공정해야 하지만, 아동 개개인 사정에 대한 고려가 없이는 또 다른 차별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비차별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반면, 사법체계에서 아동의 참여권이 쉽게 무시되곤 합니다. 아동은 자신이 관련되었거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고지 받을 권리, 사법체계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받을 권리, 상담을 받고 의견을 개진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미숙하여 사법체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동 대신 부모에게만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소된 아동에게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는 물론, 미성년자 피해자들의 처벌의사가 부모나 법정대리인에 의해 무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가해자가 부모와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아이의 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칠 경우 부모의 의사만으로 가해자와의 합의가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아동은 한번 더 상처받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법체계 전반에 걸쳐 아동이 가지는 의사소통과 발달 정도가 고려되어야 합니다. 더욱 쉽고 친근한 말, 아동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아동에게 정보와 조언을 제시해야 하며 아동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사법체계 내에서 아동의 권리가 온전히 지켜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동친화 사법체계는 기소절차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년원에 배치 받은 아동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을 강조합니다. 일단 소년원에 배치 받으면 모두 같은 식사, 의복, 침구를 사용하고 야외활동의 기회는 제한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국제 기준과 부합하는지 의문이 따릅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모든 소년구금시설에 아동의 건강과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양과 질의 음식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7년 현재 소년원생의 급식비는 1일 기준 5,199원(1끼당 1,733원)으로, 2017학년도 서울시 중학교 학교 급식 단가(1끼당 최소 4,515원)의 1/3에 그칩니다. 의료서비스 제공도 보장되지 않아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악화되어 퇴소하는 경우도 많으며, 징계와 보안장비 등에 관한 규정이 없어 아동들이 과도한 규제에 노출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소년원이 징벌 수단이 아닌 범죄를 저지른 아동이 사회로 나올 준비를 하는 시설로 인식해야 하고 이후 아동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단계를 하나씩 밟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밖에도 아동친화 사법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궁무진합니다. 독립적인 위상을 갖는 아동인권위원회 설립, 소년보호사건을 담당하는 인력과 예산의 증대, 가정법원의 확충, 소년보호사건을 종합 담당하는 소년법원 설립, 그리고 소년사법 관련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아동권리 교육 등입니다. 특히, 소년사법 관련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아동권리 교육을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는 아동친화 사법체계에 대한 규정이 미비하지만 실제로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소년사법 제도에서 아동권리 보장의 중요성을 충분히 공감하고 유엔아동권리협약의 기준을 준수한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인가요? 범죄 행위에 대해 상응하는 벌을 주는 ‘응보적 사법론’이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복적 사법론’이라는 담론은 응보적 사법론에서 발전하여, 사건 피해자가 원하는 보상을 해주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범죄 이전으로 회복되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아동은 아직 발달 과정에 있으며, 성년이 된 후로도 긴 시간을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 이 아동들을 처벌이나 징계의 대상으로 삼아 사회로의 복귀를 포기한다면, 이는 사회의 하나의 가능성을 잃을 뿐만 아니라 아동에게도 큰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징벌과 사회복귀, 여러분이 아동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유니세프는 아동친화 사법체계를 선택하신 여러분의 힘이 되겠습니다!